'친공급망 전략' 선언, 실행 조건 세 가지가 없다

코리아헤럴드와 글로벌비즈니스포럼(GBF)이 보도한 전문가 제언에 따르면, 한국이 미중 기술전쟁에서 생존하려면 특정 진영 편향 없이 공급망 파트너십을 다변화하는 '친공급망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이 전략의 핵심은 첨단 제조 역량을 레버리지로 삼아 미국·EU·일본·인도·동남아를 동시에 묶는 다층 공급망 네트워크 구축이다.
미국 국가아시아연구소(NBR)는 한국의 핵심광물 외교를 분석하며 세 가지 구조 함정을 지목했다. ① 갈륨·게르마늄·인듐 등 전략 광물의 대중 의존도가 여전히 60~85% 구간에 머물러 있어 통제 해제 여부가 중국 재량에 달려 있다. ② 쿼드·IPEF 등 다자 프레임워크에 참여하면서도 핵심광물 공동 비축·재고 공유 협정을 체결한 사례가 없다. ③ 민간 기업의 재고 현황과 조달 리스크를 정부가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데이터 공유 체계가 부재하다.
미국 한국경제연구소(KEI)는 한국의 공급망 회복력 지수를 분석하며 반도체·배터리 분야의 기술 경쟁력은 세계 최상위권이나, 원소재 조달 다변화 지수는 G7 평균의 62% 수준에 그친다고 평가했다. 특히 갈륨 국내 생산량은 연간 15.5t(2028년 고려아연 목표치)으로 국내 수요 추정치 40~50t의 31~39%에 불과하다.
한국 정부는 2026년 핵심광물 확보 예산으로 약 3,200억 원을 편성했으나, 이 중 해외 광산 지분 투자가 70% 이상을 차지한다. 광산 투자는 생산까지 평균 7~10년이 소요되는 반면, 수출통제 발동은 72시간 이내에 효력이 발생한다. 조달 속도의 비대칭이 전략의 근본 한계다.
'친공급망 전략'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세 가지 인프라가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첫째, 쿼드·IPEF 파트너와의 핵심광물 공동 비축 협정(최소 90일치 국가 비축 목표). 둘째, 한국 제조 역량을 인도·베트남·멕시코 공급망에 심는 'K-팹 아웃소싱' 체계. 셋째, 산업부·기재부·외교부가 기업 조달 데이터를 실시간 공유하는 공급망 통합 대응 센터. 이 세 가지 없이 전략 선언만 반복하면 외부 충격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 구조가 반복된다.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유지하는 비용이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은 CHIPS Act 보조금 조건으로 중국 투자 제한을 요구하고, 중국은 소재 수출통제로 한국의 중국 의존 공급망을 압박한다. 균형 유지의 실질 비용은 기업이 부담한다 —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 증설을 억제하면서도 중국산 소재에 의존하는 구조적 모순이 그 증거다.
핵심광물 조달 다변화를 선제적으로 실행한 기업이 수혜를 가져간다. LS에코에너지는 희토류 공급망을 베트남·말레이시아 경유로 재편 중이며, 포스코홀딩스는 아르헨티나 리튬 광산(옴브레 무에르토) 지분 30%를 보유해 남미 조달 루트를 확보했다. 이들은 미중 동시 통제 국면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조달 리스크를 갖는다.
한국과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에 나서는 호주·캐나다·인도가 간접 수혜국이다. 한국 기업의 해외 광산 투자 70% 이상이 이 세 나라에 집중되고 있으며, 특히 호주는 리튬·코발트·희토류 3종에서 한국의 1순위 대체 공급처로 부상하고 있다.
핵심광물 조달을 단일 루트에 의존하는 중소 소재 기업이 가장 취약하다. 이들은 다변화 투자를 위한 재무 여력이 없어, 중국 수출통제 충격이 반복될 때마다 납기 지연과 원가 급등을 고스란히 흡수해야 한다.
정부의 핵심광물 예산 3,200억 원 중 광산 투자에 쏠린 구조는 단기 공백 대응력을 약화시킨다. 광산 투자 수익이 실현되기까지 7~10년의 시차가 있는 반면, 중국의 다음 수출통제는 언제든 즉각 발동된다. 비축 예산·대체 소재 R&D 투자 비중이 낮은 현 구조에서는 충격 흡수 기간이 30일 미만에 불과하다.
기업 전략 담당자라면 지금 당장 자사 핵심 소재의 '공급원 집중도 지수(HHI)'를 계산해야 한다. 단일 국가 의존도가 70%를 넘는 소재는 즉각 2순위 공급처 발굴에 착수하고, 계약 없이도 90일치 재고를 유지하는 버퍼 정책을 내부 조달 기준으로 확립해야 한다.
개인 투자자는 '핵심광물 조달 다변화 완료 기업'을 선별 기준으로 삼을 것을 권한다. 사업보고서의 원재료 매입처 주석을 확인해 단일 국가 비중이 50% 미만인지를 체크하라. 포스코홀딩스·LS에코에너지·고려아연 등 선제 다변화 기업은 다음 수출통제 발동 때 상대적 프리미엄이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정책 관여자라면 핵심광물 예산 집행 구조를 '광산 투자 70%·비축 30%'에서 '광산 50%·비축 30%·대체소재 R&D 20%'로 재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광산 투자 수익은 10년 후에 실현되지만, 비축과 대체소재 R&D는 3~5년 안에 충격 흡수 효과가 나타난다.
실제 조달 현장에서는 — 중국 수출통제가 발동된 직후 72시간 안에 대체 공급처를 확인할 수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조달 원가 격차가 30~50%까지 벌어지는 사례를 반복적으로 목격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위기 때 어디서 살 것인가'가 아니라 '위기 전에 누구와 계약을 맺어놓을 것인가'다. 공급망 다변화는 위기 대응이 아니라 평시 계약 관리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