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AI칩 수출 통제 교착, 엔비디아 H20 중국 판매 불확실성 지속

2025년 5월 미중 정상 간 무역 협상에서 반도체 칩 수출 통제 관련 별도 합의는 도출되지 않았다.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용으로 개발한 H20 칩은 미국 상무부의 수출 규제 대상에 올라 있으며, 판매 재개를 위해서는 추가 면제 허가 또는 규정 변경이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엔비디아·AMD 고성능 칩의 전 세계 수출에 미국 허가를 의무화하는 새 규정을 추진 중이다.
엔비디아의 중국 AI 칩 매출은 2022년 전체 매출의 약 26%였으나, 수출 규제 강화 이후 2024년 기준 약 13~15%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H20 판매가 완전 차단될 경우 연간 약 100억~120억 달러 규모의 매출 공백이 발생한다. 이 공백은 엔비디아뿐 아니라 H20에 탑재되는 SK하이닉스 HBM3 수요에도 직접 영향을 준다.
중국은 자체 AI 칩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화웨이 Ascend 910C, 캠브리콘 MLU590 등 중국산 AI 칩의 성능이 엔비디아 A100과 유사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중국 AI 칩 생산에는 여전히 TSMC·삼성 수준의 첨단 공정이 필요해, 7nm 이하 공정 접근 차단이 병목으로 남아 있다.
한국의 포지션은 복잡하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HBM 공급에서 전 세계 점유율 약 50%를 차지하지만, 중국향 판매 제한이 지속되면 HBM 전체 수요 증가분이 미국·유럽 데이터센터로 집중된다. 이는 단기 수요 구조를 변화시키지만, 중국 시장 수요 회복 시나리오에서의 잠재 수혜도 함께 소멸한다.
AI칩 수출 통제의 진짜 효과는 엔비디아 매출 감소가 아니라 '중국 AI 인프라 구축 속도 지연'이다. 그러나 화웨이 Ascend 910C의 양산 확대와 중국 내 HBM 유사 제품(Hynix Lite) 개발이 진행되면서 통제 효과가 시간이 갈수록 약해지는 구조다. 2027년 이후에는 통제 자체가 중국의 자립을 가속하는 역설적 결과로 귀결될 수 있다.
한국 소재·장비 기업에게 미중 AI칩 전쟁은 단기 수요 불확실성과 중장기 시장 분리(decoupling)라는 두 가지 리스크를 동시에 의미한다. 미국 시장 중심 공급망에 편입하면 중국 수요를 잃고, 중국과 거래를 유지하면 미국 제재 리스크에 노출된다. '한국 변수'로서의 중립적 포지션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2년 내외로 좁아지고 있다.
미국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의 직접 수혜는 SK하이닉스(HBM), 삼성전자(HBM·NAND), 한미반도체(HBM 본딩 장비) 등 엔비디아 공급망에 있는 한국 기업들이 가져간다.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메타의 2025년 AI 인프라 투자는 총 30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며, 이 투자의 상당 부분이 HBM 수요로 전환된다.
중국 AI 칩 자립화 경쟁에서는 SMIC(7nm 공정 확대), 화웨이의 칩 설계 역량이 강화된다. 중국 내 AI 인프라 구축은 엔비디아 없이도 진행되므로, 중국향 HBM 유사 제품을 개발하는 창신메모리(CXMT)가 장기적으로 SK하이닉스·삼성의 중국 시장 점유율을 잠식할 수 있다.
엔비디아는 중국 시장 접근 차단이 지속될 경우 연간 100억~120억 달러 규모의 잠재 매출을 포기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중국 AI 기업들이 화웨이 Ascend 생태계로 전환하기 시작하면 향후 중국 시장 재진입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한국 반도체 소재·장비 기업 중 중국 매출 비중이 30% 이상인 기업들(원익IPS, 유진테크, 솔브레인 등)은 미중 규제 충돌이 심화될수록 매출 구조 재편 압박을 받는다. 2024년 기준 한국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중국 매출 비중은 평균 25~35%로 추정된다.
투자자는 SK하이닉스·삼성전자의 HBM 수주 중 '중국향 비중'과 '미국향 비중' 변화를 분기 실적 콘퍼런스 콜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미국향 비중이 늘어나는 방향은 단기 수익성에는 긍정적이지만, 중국 시장 재개 시 추가 수혜를 받기 어렵다는 트레이드오프를 수반한다.
소재·장비 기업 구매담당자는 고객사의 '미국 시장 집중' 전략 전환에 맞춰 미국 현지 공급망 등록(vendor qualification) 일정을 앞당겨야 한다. 미국 팹·데이터센터 납품을 위한 미국 UL 인증·수출 규정 준수(EAR) 서류 준비에 평균 6~12개월이 소요된다.
실제 조달 현장에서는 — 엔비디아 칩 수출 허가 불확실성이 높아진 2024년 이후, 중국 AI 기업들이 엔비디아 H20 대신 화웨이 Ascend 910B/C로 전환하면서 이 장비에 들어가는 HBM 유사 제품(국산 LPDDR5X 기반 메모리 모듈)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중국 내에서 삼성·SK하이닉스 HBM을 대신해 마이크론·CXMT 제품으로 교체하려는 시도가 이미 파일럿 단계에 들어갔다는 정보가 현장에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