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갈륨 年15.5t 생산, 중국 95% 독점 균열 시작

고려아연은 2025년 5월 갈륨 생산을 위한 신규 공장 건설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2028년부터 연간 15.5톤 규모의 갈륨을 생산할 예정이며, 이는 국내 최초의 상업적 규모 갈륨 생산 라인이다. 고려아연은 앞서 2024년 게르마늄 생산에 먼저 착수한 바 있으며, 이번 갈륨 라인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갈륨은 반도체 기판 소재인 질화갈륨(GaN), 비화갈륨(GaAs) 제조에 필수 투입재로, 5G RF 칩·전력 반도체·레이더 시스템에 집중 사용된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갈륨 공급량의 약 95%를 생산하고 있으며, 2023년 8월 수출 허가제를 도입한 뒤 사실상 공급 통제권을 쥐고 있다. 한국의 연간 갈륨 수입량은 약 30~35톤 수준으로 추정된다.
고려아연의 갈륨 원료는 아연 제련 부산물에서 회수되는 구조다. 아연 정광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잔류 금속을 정제해 갈륨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별도의 광산 개발 없이도 생산 가능하다는 점이 경쟁력이다. 연간 처리하는 아연 정광 규모가 국내 최대인 만큼, 원료 확보의 구조적 우위가 존재한다.
회사 측은 이번 갈륨 생산 목표를 '대한민국 유일 공급망을 넘어 글로벌 허브'로 표현했다. 연 15.5톤이 실현되면 한국 국내 수요의 약 45~50%를 자체 조달하는 수준이 된다. 중국 수출 허가 지연이나 규제 강화 시나리오에서 국내 GaN 반도체·전력소자 생산라인의 가동 중단 리스크를 완충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공급자 입장에서 이 발표의 핵심은 '타이밍'이다. 중국이 2023년 갈륨 수출 허가제를 도입한 지 약 2년 만에 국내 대체 공급원이 가시화됐다. 통상 소재 공장 기획부터 상업 생산까지 5~7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려아연은 중국 규제 발동 이전부터 이미 준비를 진행했다는 뜻이다. 소재 공급망은 규제가 터진 뒤 대응하면 이미 늦다.
갈륨 연 15.5톤 공급이 시작되면 국내 수요처의 조달 협상력이 변한다. 지금까지 국내 GaN 소재 수요 기업들은 중국산 단일 소싱 구조에서 벗어날 선택지가 없었다. 2028년 이후 국내 조달 옵션이 생기면, 가격 협상·납기 협상 모두에서 레버리지가 생긴다. 이는 단순 국산화 이상의 구조 변화다.
그러나 15.5톤은 국내 수요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여전히 수입에 의존해야 하므로, 중국 외 대체 공급원 다변화(캐나다 5N Plus, 독일 Freiberger 등)와 병행하지 않으면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완전한 탈중국은 2030년대 중반 이후에나 가능한 시나리오로 봐야 한다.
고려아연은 갈륨·게르마늄 양대 전략 소재 생산 기업으로 포지션을 굳히게 된다. 게르마늄에 이어 갈륨까지 국내 유일 생산자가 될 경우, 정부 전략 비축 물량 공급 계약·장기 공급 계약에서 독점적 협상력을 가진다. 영풍그룹과의 경영권 분쟁 결과와 무관하게, 소재 사업 자체의 전략적 가치는 확대된다.
국내 GaN 전력반도체 팹 및 5G RF 칩 조립사들이 수혜를 받는다. 현재 삼성전자·SK하이닉스 외에 DB하이텍·예스파워테크닉스 등 SiC·GaN 전력소자 생산 기업들이 갈륨 안정 조달에 민감하다. 2028년 이후 국내 공급원이 생기면 이들 기업의 조달 원가 변동성이 줄어든다.
소재 국산화 정책을 추진 중인 산업통상자원부 및 관련 R&D 기관도 정책 실적 측면에서 수혜를 본다. 2019년 일본 수출 규제 이후 추진된 소부장 자립화 정책의 핵심 사례로 갈륨 국산화가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갈륨 생산·수출 업체들은 한국 시장 점유율 일부를 잃게 된다. 한국이 연간 15.5톤을 자체 조달하면 중국산 수입 대체 효과가 발생한다. 중국은 현재 한국에 연간 20~25톤 이상을 공급해왔으며, 이 중 최소 40~50%가 2028년 이후 대체될 수 있다.
단기적으로 국내 갈륨 중간 무역상(트레이더)들의 수익 구조가 흔들린다. 지금까지는 중국산 갈륨을 수입해 국내 반도체·LED 소재사에 공급하는 중개 마진 구조가 유지됐다. 고려아연이 직접 수요처에 공급하는 구조로 전환되면 중간 유통 단계가 축소될 수 있다.
투자자라면 고려아연의 갈륨·게르마늄 사업 부문 매출 비중 변화를 2026~2028년 실적 가이던스에서 별도 확인해야 한다. 현재는 소재 생산 매출이 전체 매출의 5% 미만이지만, 전략 소재 공급 계약이 확정되면 밸류에이션 재평가의 트리거가 될 수 있다.
구매담당자는 현재 갈륨 조달 계약의 잔여 기간을 점검해야 한다. 2025~2027년 사이에 계약이 만료되는 장기 공급 계약이 있다면, 고려아연 생산 개시(2028년) 이전에 브릿지 공급원(캐나다 5N Plus, 독일 Freiberger)을 확보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실제 조달 현장에서는 — 갈륨 수출 허가제 도입 이후 중국 공급사들이 납기를 4~8주에서 12~16주로 연장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이 납기 지연은 공식 규제가 아니라 '허가 대기' 명목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계약 위반으로 클레임하기도 어렵다. 2028년 이전까지는 안전 재고를 최소 16주치로 늘려두는 것이 현실적 리스크 관리다.